비샤 2024. 9. 12. 01:29

 

포사 褒姒

다시금 말하지만, 이 소녀의 이름은 포사.

주나라의 경국지색, 시체가 쌓인 채 불타는 갈대밭의 보석──
비단을 찢어라! 가위로 찔러라! 천을 잡아뜯어라! 연기를 피워라, 봉화를 올려라!
「사실은, 그 어떤 것도 해달라고 한 적 없어.」

그런 존재방식은 외신이 인류를 갉아먹는 모습과 아주 닮아있다.


생일 불명

신장/체중 158/평균

속성 혼돈·악

좋아하는 것 낚시

싫어하는 것 예의범절

결전의 날 별과 땅이 맞닿는 곳

 

「가만히 있어라」 지시를 받으면 점잖게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순진무구 천진난만의 한없는 소녀가 되는 '용'.

여기서 용은 진정한 용이 아니라 그저 뱀의 분화일 뿐이다. 그래도 일종의 '무고의 괴물' 판정으로 전설을 따라 용의 딸과 비슷한 존재가 된 포사.

 

「안녕good morning, 안녕good afternoon, 안녕good bye. ───안녕히Farewell, world.」 그렇게 말하고 소녀는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그것이 주어진 역할이니까. 하지만 몰입한 관객은 커튼 뒤에 사라진 배우가 있다고는 생각하지도 못한다. 아무도 관측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서있는 이상 그녀는 분명히 존재한다.

 

인간이 될 수는 없으나 '뱀 인간'이라는 정체성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적어도 이 이야기 속에서는 계속해서 혼란스런 정체성을 안고 있을 것이고, 그것에 답을 내리지 않든 '그것 자체'가 답이라고 말하든 그건 포사의 선택이다.

 

인간의 문화도, 뱀 인간의 문화도 잘 모른다. 외신의 문화는 더더욱 알 길이 없다. 이것은 그녀의 태생 때문이며, 어느 한 곳에 정착할 수 없었던 그녀의 삶 때문이며, 혼란과 폭동, 전쟁 속에서 유일하게 남은 들장미인 그녀의 생 때문이다. 그런 자신을 원망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의미가 없으니까). 하지만 가끔은 생각을 해 본다. 만약 내가 평범한 여자아이로 태어났다면, 만들어진 이유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 나의 생 마지막에 함께하는 누군가가 죽어가는 나의 삶에 대고 '넌 어떤 사람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을만한 세계가 됐겠지. 그리고 꺼져가는 불꽃 속에서 그 목소리를 들어가며 '어떤 삶이었지'라며 회고할 수 있는, 그런─── 세계에게 상냥한 아이가 되고 싶었어. 그랬다면 이 세계를 더 알아갈 수 있었을까? 사랑할 수 있었을까?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이제는 가질 수 있었을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런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면. 그렇다면 그 다음에는 최악의 존재로 태어나, 세계를 진정으로 미워해보기도 해야지. 인간을 향한 강하고 뚜렷한 원망도 느껴봐야지.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살아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해.

그러니 나는 그 연료를 원해. 그 반짝임 속에 함께하고 싶어.

너희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싶어.

배를 땅에 댄 것도 아닌데, 막힘없이 걸어나가는 모습에 감탄하고 싶어.

너희들을 사랑하고 싶어. 이것은 내가 죽고 나서 생긴 주박.

 

"아직 사랑에 도달하지 못한 감정"이, "아직 멸망시키지 못한 원망의 기계"라는 본질과 정확히 충돌하고 있다. 그것이 외신과 포사를 양립하게 만드는 모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