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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트리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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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7.

#1 집(흐릿한 하늘, 오전)

결국 반강제로 자택으로 보내져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네스.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소파에 쭈그리고 있다. 잠시 후 들리는 초인종 소리. 방호팀 멤버이자 이네스의 동창인 위고(Hugo)였다.

 

위고: 젠장, 이네스, 꼴이 이게 뭐야! 집 문도 열어놓고. 기운 좀 내...

이네스: 나, 난... 윽.

위고: 미안, 정신 없다는 건 알아. 하지만 나도 그 광물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 일정 시간이 지나면 뱉어낸다며? 어쩌면, 사이어는 죽지 않았을지도 몰라. 다시 뱉어낼지도 모른다고.

이네스: 정말 그럴까? 난 모르겠어. 난 그걸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꺼려진 건 사실이야. 하지만 걘 그 돌덩어리를 아꼈지. 그런데, ... 난 그 애를 구하지 못했어...

위고: 내 말을 들어! 윗사람들은 그런 감정적인 부분들에 대해 이해해주지 않을거야, 게다가 너와 친분이 있는 나를 불러내서 너에게 진술을 시키게 데리러 오라고 했다고. 자, 가자, 이네스. 운전은 내가 해 줄게.

 

이네스는 그곳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원래부터 소심한 성격 탓에 뭐라 더 말하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따라가게 된다. 지나가는 그들 뒤로 어렸을 때부터 단 둘이서 찍힌 이네스와 사이어의 졸업 사진들이 덕지덕지 전자 보드에 업로드 되어 있다.

 

#2 연구소, 법무 부서 상담실

법무 부서 직원이 그녀에게 이것저것 질문하고, 이네스는 마지못해 답하는 식으로 질답이 반복된다. 이네스는 아직도 충격에 빠져 허공을 바라본 채 대답하고 있다.

 

법무 부서 직원: 이네스 씨, 그 사고는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연구소에서 연구 도중 일어난 사고이기도 하니, 성실하게 대답하셔야 저희도 일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네스: (파르르 떨더니 법무 부서원을 쳐다본다) 유감스럽다는 말로 퉁쳐질 것 같으세요? 우린 어렸을 때부터 서로밖에 없었다고요.

법무 부서 직원: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연구원들의 개인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니까요. 부모를 일찍 여의고, 학교부터 직장까지 꼭 같이 갈 정도로 각별했다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네스: ... ...

이네스: 계속 질문하세요.

법무 부서 직원: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이네스 씨, 당신은 '연구 보호 관리법'의 조항 중 '연구에 생명체를 이용하거나, 연구 도중 생명체가 탄생했을 경우 그것에 대한 책임과 관리는 연구 담당자가 지게 된다'는 내용을 아십니까?

이네스: ...뭐요? 지금 저보고 제 동생을 죽인 살인자... 아니, 살인 광물이랑 같이 살라는 건가요!?

법무 부서 직원: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이네스 씨. 다른 방법으로는 저희 연구소에 책임과 권한을 위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광물은 포식한 물건의 모습으로 변모한다고 하셨죠?

이네스: 네... ...그, 그렇게 된다면...

법무 부서 직원: (바닥을 톡톡 친다)이것은 연구소를 대변하는 발언이 아닌, 지극히 사적인 조언입니다만... 저라면 제 가족의 얼굴을 한 무언가가 실험체로 쓰이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군요. 적어도 제가 담당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말입니다.

이네스: 애, 애초에 지금 생명체도 아니잖아요! 연구 보고서를 보셨겠지만, 그건 명백히 비생물이었다고요!

법무 부서 직원: 하지만 지금은 오리무중이죠. 생명체를 섭취한 사례는 이것이 처음이니까요. 외부 인사와 함께 회의 후 안내드리게 될 것입니다. 조사는 여기까지 하죠,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은 출근하셔도 좋고, 집으로 돌아가셔도 상관 없다고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이네스: .......그것은 지금 어디 있죠?

법무 부서 직원: 무슨 짓을 해도 전혀 움직이지를 않아서, 일단 이네스 씨 랩에다 펜스를 치고 그곳에 격리해두었습니다... 만나고 싶으시다면 방호 부서 직원과 동행하셔야 합니다.

이네스: 알겠어요.

 

이네스가 자리를 떠난다. 법무 부서 직원이 한숨을 쉰다.

 

#3 개인 랩실

위고와 함께 랩실 앞에 도착한 이네스는 무슨 생각이라도 하는지 식은땀을 흘린다.

 

위고: 저거, 꿈쩍도 안하더라. 어제랑 자세 하나 다르지 않아. 숨 쉬는 것도, 눈 깜빡이는 것도 잊어버린 사람 처럼...

이네스: ... (그럴 리가 없어. 저건, 분명 나와 눈이 마주쳤다고)

 

이네스가 가까이 다가간다. 위고는 막을까 싶었지만, 결국 멀리 문 뒤에서 이네스를 바라보고 있다. 이네스는 머뭇거리다 한마디를 내뱉는다.

 

이네스: ...사이어?

카멜라이트: ... ... (고개를 돌려 이네스를 바라본다) 이네스.

이네스: (주춤한다)

위고: (!) 설마, 진짜 사이어인가!?

이네스: 아냐, 아냐, 나는 알 수 있어. 이건 카멜라이트야. 나는 알 수 있어, 하지만, 난 얘한테 내 이름을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하지만 카멜라이트는 그 이후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입을 여는 일도 다시는 없었다.

 

이네스: 역시 오늘은 이만 집으로 갈래.

위고: 데려다줄까?

이네스: 됐어. 좀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위고: ...너무 걱정 마, 이네스. 저건...

이네스: 알고 있어, 무슨 물건을 섭취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카멜라이트는 반드시 뱉어내고 원래의 옥수수 전분 반죽 같은 모양으로 돌아갔어. 사이어도 돌아올거야, 분명, 분명해...

 

#4 집(밤, 새벽)

이네스는 홀로 남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근미래 식의 하얀 껍데기의 도시락이다.

 

이네스: (깨작깨작 먹는다) ...조용해. [하지만 사이어는 돌아올거야, 난 괜찮아. 그는 죽지 않았어, 그것의 몸속에서 아직도 살아 있을 거라고. 마치 마트료시카처럼...]

 

그 순간 전화기가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저장이 되어있지 않았지만 이네스는 그 번호의 주인을 알 수 있었다.

이네스: 뒷자리가 우리 연구소 전화번호 뒷자리야... 법무 부서구나.

손목의 작은 버튼을 누르자 통화가 연결된다.

 

법무 부서 직원: [늦은 시간 연락 죄송합니다, 이네스 씨.]

이네스: 회의 결과가 나왔어요?

법무 부서 직원: [네, ...]

이네스: 어떻게 됐는데요? 왜 말이 없어요? ...

법무 부서 직원: 유감스러운 말씀이지만, 실험체 '○○○○○○'는 생물이 맞다고 결과가 나왔고, 내일까지 책임권한을 어떻게 할지 연락을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네스: .......

법무 부서 직원: 또한 지금까지는 섭취한 음식을 소화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비파괴검사로 내부를 검사해 검증이 되었지만... 이번에는 검사 결과 평범한 인간의 신체구조만 확인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법무 부서 직원: 응용지질학 부서 공동연구부장 사이어 씨는 사망하셨습니다.

 

이네스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표정만큼은 확실했다. 절망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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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그림자도, 희망, 갈망, 혹은 절망의 그림자도 드리울 빛이 없었다. 하지만 광막한 선율의 힘 자체가 영혼 속에서 깨어나, 마치 파도가 제 오롯한 육신에게 세례를 하듯 오랜 각명의 나선을 갈기갈기 찢고 뒤흔들었다. ⓒ 밀레니엄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