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기

2023. 4. 30.萬有愛情/오늘의 일기

나는 종이가 아니었다면 별을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쓸모없는 이야기 /진은영)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취미를 가져야 한다’가 일과 삶에 있어서 내 지론이다. 취미라는 것은 특히 자신이 하는 일과 멀리 떨어져 있어야 안정된다. 이 학교에는 취미가 곧 일로 바뀔 아이들이 모여있고, 나도 그중 하나였지만, 나에게는 일과 아주 관련없이 사랑하고 있는 취미가 있다. 하나의 경험이라고도 부를 수도 있겠지만, 정확히는 이 시를 통해 나의 삶을 관통한 ‘별’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싶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 미술보다도 좋아했던 과목은 바로 과학이었다. 물론 과학이라고 전부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다른 것들은 전부 관심이 없었고, 유일하게 눈을 빛내던 분야는 바로 지구과학이었다. 조금 더 자세히 꼽아보자면, ‘별과 우주’에 관한 단원을 특히나 좋아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가타카」, 「코어」, 「마션」... 틈만 나면 하늘을 바라보고, 대삼각형, 다이아몬드, 그런 것을 찾아 나섰다.
 언제부터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기억하고 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을 제주도에서 보냈는데, 내가 살던 곳에는 천문대가 있었다. 규모도 제법 크고, 4D 체험관이나 스텔라리움, 옥상에는 망원경도 올라가있는 아주 멋진 곳이다. 나는 계절이 바뀌기도 전에 또 가고 싶다고 엄마에게 조르고는 했다. 어린 나이라면 역동적이고 즐거운 4D 체험관이 재밌어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보다 더 내부에 있는 스텔라리움이 좋았다. 스텔라리움이라는 것은 반구형의 공간에 수십 개의 영화관 같은 의자를 놓고, 반구형의 벽과 천장을 통해 프로젝트 빔으로 나오는 별을 관찰할 수 있는… 일종의 360˚짜리 영화관이다. 나는 스텔라리움에서만 볼 수 있는 경이로움에 푹 빠졌다. 머리 위에 별들이 쏟아질 것처럼 반짝인다. 큰곰과 작은곰이 뛰놀고 옆에선 카시오페이아가 노래한다. 순식간에, 별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별을 연구했을 것이다. 조금 나이가 들고 나서 천문학은 반짝이는 별이 아니라 하나의 그래프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지금은 그래도 좋다. 별이랑 연관됐다면 나는 물리도 화학도 전부 배웠을 것 같으니까. 물론 이젠 그림을 그리는 걸 업으로 삼기로 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별을 보는 것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춘천은 정말 별이 잘 보인다. 맑은 날이 많은 겨울이라면 특히, 운만 좋다면 별을 수십 개도 찾을 수 있다. 일요일,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에 운동장 한가운데에 서서 별을 세는 것이 나의 취미이자 루틴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내 인생과는 많이 동떨어진, 관련이 없는 ‘쓸모없는 것’에 가깝다. 하지만 쓸모없는 것이란 건 무엇일까? 정말 쓸모없는 것이 세상에 존재할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또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탈레스라는 고대 사람이다. 탈레스는 철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그리스의 철학인으로, 그런 이명과 어울리지 않는 아주 부끄러운 일화가 전해져내려온다. 탈레스는 하녀와 함께 걸으며 별을 바라보다가, 미처 눈치 못 채고 도랑에 빠져 넘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하녀는 비웃으며 말했다. ‘탈레스여, 당신은 발아래 있는 것조차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늘에 있을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그것이 너무 임팩트 있는 이야기라 묻힐 수 있지만, 다시 한번 탈레스의 이명을 생각해보자. ‘철학의 아버지’ 어떠한 분야의 아버지라는 것은 선구자, 개척자라는 뜻이며, 그건 굉장히 대단한 일이다.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만물을 이루는 요소를 ‘아르케’라고 하는데, 이 아르케가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철학자들이 고민했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철학적 답을 내놓은 것이 바로 탈레스의 ‘만물은 물이다’였다. 물론 지금은 과학적으로 말도 안된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이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을 최초로 철학적으로 바라본 사람이라는 점이다. ‘세상은 신의 의지’라던가 ‘세상은 신의 변덕’이라는 당대의 보편적 해석 대신 ‘세상은 자연의 결합’이라는 인간적인 접근을 한 그는 철학의 선구자이고, 위대한 철학가이다.
일화에서 하녀가 비웃으면서 했던 말은 오늘날까지도 현실도 못 보면서 진리(‘쓸모없는 것’)를 추구하는 철학가를 비판할 때 쓰곤 한다. 하지만 다른 철학자들이나 내 생각은 다르다. 현실과 진리, 둘은 양립할 수가 없다. 그러니 기꺼이 현실을 내려놓고 진리를 탐구한 탈레스는 숭고한 것이다. 과연 현실과 미래에만 급급한 것이 좋은 걸까? 세상을 고찰하는 건 아주 쓸모없는 것일까? 철학이 있기에 세상은 입체적일 수 있으며 나 같이 앞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는 사람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소중한 게, 바로 고찰과 지론이다.


 ‘쓸모없는 것’이라고 여겨질 만한 것들은 확실히 있다. 이 시에서도 나왔듯이, 굳이 고민해도 삶에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  문제들. 하지만 그런 요소들이야말로 세상을 입체적으로, 다채롭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내가 어렸을 때는 ‘심심이’라는 어플이 유행했었다. AI인 심심이와 함께 톡을 할 수 있는 어플이었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나는 쓸모없는 사람인가 봐’라는 톡을 해서 심심이에서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어요’라는 답을 듣는 것이었다. 별을 사랑하는 마음, 탈레스가 선구한 세계의 원리, ‘쓸모없는 것은 없다’는 말. 그런 쓸모없는 것들이 한데 뒤섞여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다. 어쩌면 인생에서 우선순위는 떨어질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절대 놓아서는 안될 나의 부품들이다. 내가 고른 시에서 적힌 짧고 다양한, 굳이 필요 없는 것들이 시에 색채를 불어넣어주는 것처럼 내가 사랑하는 ‘쓸모없는 것들’은 나에게 색채를 불어넣어주고, 그 색채로 나는 나만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자아낼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나에게 있어 ‘쓸모없는 것’의 동의어는 ‘아주 소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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