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마운츠에서 아침을
2024. 5. 20.夢/Puzzle & Riddle
소파에 기대어 상영되는 영화를 보았다. 그 이야기는 조금은 지루하고, 꽤나 슬펐다. 눈물이 나진 않을 건조한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회색빛 우주선을 타고 자신이 추구하던 꿈으로 향하는 주인공을 봤을 땐 조금 울었을지도 모른다.
‘Maybe I'm not leaving.’
‘Maybe I'm going home.’
이 영화를 보여준 사람이 '우리는 영원한 여행자'라고 했었다. 너무 작아서, 얼마나 멀리 있는지 가늠도 되지 않는 작은 점을 향해 순례하는 종족.
나는 그곳에 도달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저 끝과 끝을 이어주는 선을 이루기 위한 작은 입자에 불과했으며, 그곳에 자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로부터 왔지? 내가 가야할 곳은 어디야?
나는··· 어디에 있어?
「민간 호텔 안에서까지 이렇게 무방비할 줄은 몰랐습니다.」
깨어난 박사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퍼즐이 커텐을 활짝 젖힌다. 새하얀 빛이 쏟아지며 창문 안으로 들어왔다. 신생의 땅 컬럼비아, 트리마운츠 역시 건물로 즐비해있다. 태양보다도 밝은 빛이라는 수식어 아래, 크고 작은 건물들이 무질서하게 섞인 카시미어와는 다르다.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이의 빌딩은 질서정연해 태양을 전혀 가리지 않았다. '바깥에서 이곳을 훑을 수 있는 건 이 태양 밖에 없을 거야, 네가 수시로 이 방을 점검하고 있단 걸 알아.' 엔도네는 작게 웃으며 옷장의 문을 열었다.
퍼즐은 작은 테이블 옆에 앉아 커피를 홀짝대며, 오늘자 발간된 컬럼비아의 신문을 읽고 있다. 트리마운츠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트리마운츠 호라이즌 아크 사건'에 관한 기사가 신문 맨 앞 지면에 크게 실려있다. 퍼즐은 일전에 한번 만났던 한 발랄한 생태학자의 얼굴을 알아봤다.
「켈시는 어디갔어?」
「오퍼레이터 이프리트, 로즈몬티스를 데리고 틴맨이라는 자를 찾으러 가신 모양입니다. 오늘 밤, 더 늦으면 내일 아침에 돌아올수도 있다고 하셨어요. 로도스로 돌아가는 것은 내일 오후 1시 출발입니다.」
「그럼 내가 할 일은?」
「'대기하라'고...」
「좋아, 나갈까.」
대답을 가볍게 끊는다. 거대한 옷장 문이 말을 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겉옷을 챙긴 엔도네가 살포시 문을 닫으며 돌아섰다.
「제가 무슨 말을 할지 아실 텐데요. 은근슬쩍 피하지 마세요.」
「뭐 어때. 켈시가 도착했을 때 '이곳에 대기 중'이면 되는 일 아냐? 난 호텔에서 썩기 싫어. 오늘 날씨도 좋은데.」
퍼즐은 한숨을 한번 내쉬고 의자 위에 놓여진 자켓을 걸쳐입었다. 그에게 악의는 없다, 곤란하게 만들 생각도. 그가 언제나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기에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것뿐이다. 솔직하게 말해줄 생각은 없지만, 평범하게 대했을 때 퍼즐은 엔도네를 떠나갈 것이다. 요철이 없는 퍼즐은 맞물리지 않고, 더더욱 '서로일 필요가 없다'. 서로가 그것은 가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내가 불편한 건 아니지?」
「딱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훨씬 까다로운 빅토리아 귀족도 경험해봤으니까요.」
「그 사람, 별로 좋은 결말은 아녔던 것 같은데」
「...업무에 사적인 감정을 담지는 않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좋겠다.」 맹세할게, 비아냥거리는 게 아니야. 네게는 너무 자주 맹세하게 되는 것 같지만.
호텔 옆 상가 1층에는 오리지늄 회로를 통해 작동되는 텔레비전이 있다. 관광안내소 같았다. 한 모니터에서는 '차단층'을 찢은 모습이 찍힌 사진이 앵커 뒤에서 재생되고 있었고, 다른 모니터에서는 라인랩 및 다른 연구소들을 소개하는 영상이 흘러나왔다. 엔도네는 호텔 조식에서 받은 크루아상과 커피를 마시며 한참을 쳐다봤다.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퍼즐이 적막을 깨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다.
「...」 엔도네가 대답하지 않는 것 또한... 하지만 퍼즐은 기다렸다. 아무리 신비주의를 고집하는 '박사'여도 이렇게나 오랜 시간을 함께하다보면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게 있다.
답할 필요가 없음에도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그러나, 거짓으로도 말할 수 있으면서 아무 말 않는다는 건...
퍼즐이 엔도네를 지그시 바라보는 동안, 그는 옅은 미소와 함께 광고를 유심히 볼 뿐이었다. 따뜻한 커피로 목을 축였다.
「어제 트리마운츠 내부는 충분히 둘러본 것 같아. 바빠서 뭐가 뭔지는 잘 몰랐지만, 결국 다 비슷했을거라 생각해.」
멀리서 연구 단지가 보였다. 그러나 이곳은 꽃이 만개한 초원이었다. 자연의 옆에서 과학은 발전한다. 아이러니한 곳이었지만, 적어도 트리마운츠 근처에서 가장 조용한 장소다. 엔도네가 이러한 이질적 공간이 성립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저 회사의 회장이 연구 단지 옆의 땅도 물론 구매했지만, 원래도 꽃을 좋아했던지라 남는 잉여 땅을 탈바꿈시켰다. 꽃은 당연히 먼 오지에서 옮겨온 가짜들이다.
「이들은 돈으로 낭만을 사고, 돈으로 낭만을 속이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많은 것들을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 긍정하는 게 엔도네의 특징이다.
하얀 꽃들이 흩날린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꽃들이지만 엔도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꽃과 닮아 있었다. 두 사람은 초원에 앉았다.
「걱정 마, 언젠가는 내 입으로 직접 네게 말해야 한단 걸 알고 있었어.」 마음을 연 사람에게 방어적으로 대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아니, 오히려 그런 태도를 내려놓음으로써 진정으로 마음을 열었다는 증명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까? 질문해도 좋아. 대답할 수 있는 선까지는 답해줄게.」
「본명이 무엇이죠?」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야?」
「답해도 가장 문제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로도스의 전신인 바벨 시절에는 코드네임이 아니라 본명으로 불렸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에게도 물어봐도 좋지 않나? 하지만 다들 의리 있는 성격이니까, 엔도네의 새 출발을 응원하는 의미로 함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어렸던 아미야도 이제는 엔도네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쭉 박사님이라고 에둘러 불렀던 걸 떠올리자 작게 웃는다.
「동족들에게는 예언가-오라클-라고 불렸어. 가족과 친우에게는 캄파넬라로, 바벨의 사람들에게는 그때도 박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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